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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지난 수요일에 수강생들이 단편소설을 완성한 기념으로 김현영 선생님께서 수업 후 한 턱 쏘셨다. ^^; 전체 수강기간의 절반이 지나도록 이런 자리를 가지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뭐. 지난 한 달 동안 정말로 힘들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지난 한 달 동안은 운동도 하지 않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매일 10시 까지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꽃구경 한 번 못 하고 선생님들이 놀자고 해도 놀지도 않고 혼자서 노트북 앞에서 끙끙 앓았다. 얼마나 어깨가 결리는지.. ㅠ.ㅠ

  뭐.. 다 쓰고 보니.. 정말로 별로인 글이던데.. 주절 주절.. 그냥 내 인생의 변명, 신세타령 같은 것을 글로 하고 있더라. 그래도 다 쓰고 나니까 후련하구만.

  그래..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드는구나.. 그래.. 취미삼아 글을 쓰는 걸로 만족하자. 꼭 인생의 명작 같은 걸 안 만들어도 좋으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써주거나 영상을 찍어 선물하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 ^^;;; 프로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특히 예술분야에서 전문작가가 되는 것은 only one 이 되는 것이다. 2등은 의미가 없다. 2등 요리사의 음식을 먹고 2등 제단사의 옷을  입기도 하지만 2등의 영화를 보거나 2등의 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절대로 즐기면서 프로가 될 수는 없다..

  그래~~ 이제는 재테크도 열심히 하고, 요리도 직접 해 먹고, 집안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용모에도 신경을 쓰고. . . . .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선생님도 되자~~~

  휴~~ 나도 이제 결혼도 하고 해야징.. 언제까지.. 피터팬처럼 살 수는 없잖아~~~

2008/05/11 23:23 2008/05/11 23:23

이거 원.. 글 쓰는 것 배우니까 블로그에도 글을 함부로 적지 못하겠는 걸.. 계속 해서 맞춤법 신경쓰고 계속 다시 퇴고해야할 것만 같기도 하고.. 힘들어라..

오늘 수업은 김현영 작가님과 1시간, 그리고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작가님의 1시간 특강이 있었다. 수업의 내용은 주로 작가의 태도와 정의적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뭐.. 크게 논리적 연관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니까 번호를 붙여가면서 중요한 내용을 쓰자.


1
우선.. 글을 쓰는 우리는 결핍이 있는 존재이다. 다른 방식으로도 결핍을 해소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글을 쓰기로 했다. 글에 대한 욕구가 생기면 바로 컴퓨터에 앉아야한다. 그리고 그 무엇을 시작하게 되면 끝을 봐야만 한다. 처음 쓸 때 끝을 보지 못한다면 영원히 끝을 볼 수 없다.

2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이유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자기 존재의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이기호의 '수인'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시멘트 벽을 파고 든다. 과제는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여편 소설 정도의 분량의 글 써오기.

3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소설을 써야한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을 써야한다.

4
소설은 논리의 싸움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완벽하게 설계도를 머리 속에 그려놓아야 한다. 고대소설은 필연으로 시작해서 우연적으로 해결을 맞아하거나 신이 문제를 해결해준다. 현대소설은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끝나기 때문에 개연성이 필요하다. 또한 한 문장 한 문장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끈끈한 논리로 붙여진 것이다. 소설 속의 논리는 현실 속의 논리는 다르다. 현실세계에 실재 존재한 사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존재할 법한 것을 써야 한다.

5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써야한다. 그것이 예술 작품의 생명력이고 진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외면의 묘사뿐만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생생하게 묘샤해야 한다..

6
소설 속에서 작가와 화자를 구분해야한다.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 작가의 목소리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화자를 통해서 말을 해야 한다. 습작을 할 때 3인칭으로 글을 써 보는 것도 좋다.

7
철학이 소설을 따라가야 한다. 소설이란 항상 문제에 답을 주는 장르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사회의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독자가 똑같은 답(감상)을 얻는다면 좋지 않은 소설이다.

8
가상의 독자를 선정하고 글을 쓰면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높일 수 있다. '김태희'사진을 벽에 붙여놓으세요.. ㅡㅡ;

9

꼭 소설을 많이 읽어야 글을 소재를 찾는 것은 아니다. 비소설류도 많이 읽어야 하고, 시를 읽으면서 소설의 문장을 배운다.

10
소설은 정직한 장르다.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가 나온다. 하루 하루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11
필사를 하는 이유는 소설을 느리게 읽기 위해서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느리게 읽어야 한다. 필사는 컴퓨터로 하지 않고 연필로 하는 것이 좋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김승옥, 조세희, 오정희

2008/04/18 22:27 2008/04/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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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좋아지는 보테로의 그림~~ ^^

  단편소설 초고를 4월 27일까지 써야한다. 4월 30일부터 합평을 시작한다. 아~~ 내 인생 최초로 소설을 쓰는구나. 뭐 소설창작에 특별한 왕도나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그냥 쓰는 것이 중요하다. 스무명 정도 되는 수강생과 선생님 앞에 글을 보여주려면 열심히 써야 한다. 열심히 써서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워야 한다.

음.. 쓸데없이 TV 앞에 앉아서 시간보내지 말고, 의미없이 힘을 빼지 말고, 열심히 열심히 써야 한다. 우우~ 2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구나.

셰익스피어가 "극본 창작 기법"이라는 책을 읽고 극본을 쓴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소설이라고 불릴만한 글을 쓴 사람 역시 "소설 창작 기법"이라는 책을 보고 소설을 쓰지 않았다. 뭐.. 내가 살면서 100편 정도의 소설은 읽지 않았겠어?? 그 소설들을 읽다보면서, 어떻게 쓰는지를 배우지 않았겠어?? 내안에 정답이 있다. 있다.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 안에 숨쉬고 있을지도 모르는 세익스피어의 유전자를 찾아서..

2008/04/04 14:33 2008/04/04 14:33
  음..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하자. 뭐. .블로그라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움하하하~~

  아~~ 요즘 너무 좋다.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오고, 뭐.. 배우는 것도 그럭 저럭 배우고 있고~  ~ ~ 언젠가 오늘을 회상하면서 미소 짓겠지. 그래.. 남사당패가 되어 세상을 유랑하는 기분인데. 뭐.. 세상에는 즐거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 소설 창작 강좌 1 §

  창작에는 지름길도 없고 수학공식 같은 것도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많이 읽고 쓰는 것보다, 지혜롭게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


§ 소설 창작 강좌 2 §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상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사물을 인습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것을 지각의 자동화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의 사회성을 의미하고 다른 사람과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사물과 그 이름의 관계는 자의적인데,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 관계의 연관고리를 끊고 새로운 자기만의 연관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상상적 시각 : 외면을 본다  → 내면을 본다 → 다른 세계까지 본다.

상상적 시각이라고 해서 꼭 시각적 이미지의 관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상상적 시각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문학의 낯설게 하기..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한다. 낯설게 하기의 목적은 남들과 다르게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현기 "당신도 시를 쓸 수 있다." 의 상상적 시각의 단계
    빅터.. "책상은 책상이다."                                              참고하길...


§ 소설 창작 강좌 3 §

왜 작가가 되려는 것인가? 왜 쓰는가?
이전 세대에게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었다. 특별한 역사(시대의 아픔)를 경험하거나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들의 한을 푸는 작업이었고, 또한 소설작품을 읽는다는 의미 역시 한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숙지황처럼 아주 무겁고 어려운 문학이었다.

지금 세대에게는 시대의 아픔이나 서로 공감할만한 공통의 역사가 없다. 지금의 작가는 블로그에 글을 적듯 자신의 내면에 대해 서술하는 가벼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 역시 가벼운 소설을 원한다. 소설 책 한권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이현 - 삼풍백화점 참고~

숙제 -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 것인가?


2008/04/03 17:44 2008/04/03 17:44
 숙제는 자신의 스타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감상문 쓰기다..

과제 내기 전에 밑의 초고를 다시 수정했다. 이 한글파일이 최종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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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 갑을고시원 체류기



박민규씨의 소설은 맛있는 주전부리다. 고전을 읽을 때에는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생각으로 혀의 감각을 의도적으로 마비시킨 채 글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반면 박민규씨의 소설은 “손이 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가요.”다. 보약처럼 건강을 회복시킬 힘은 없지만, TV를 보면서 먹는 스낵처럼 하나를 먹으면 그 하나에서 멈출 줄 모른다.

박민규씨가 구사하는 독특한 문체가 글을 맛있게 조리하는 비결이다. 3년 전 처음으로 박민규씨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았을 때 문체의 독특함에 놀랐다. 책을 읽는데에 끈기가 별로 없는 나 역시도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봤을 정도이다. 독특한 문단 나누기, 인터넷소설을 보는듯한 가벼운 어투, 지루할만 하면 등장하는 참신한 묘사가 그 맛의 정체이다. 갑을고시원체류기에서 기억에 남는 묘사는 방귀를 가스의 양에 따라 ‘온순한 열대어, 여러 마리의 참치, 백상어’로 묘사한 부분이다.

인물을 향한 따뜻한 시선들도 달콤하게 하는 요소이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남보다 더 잘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허리가 휘어져라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박민규는 그들이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는 모습을 언젠가 기다리고 있을 해피엔딩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명랑만화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은 건물 5층에서 자유낙하 하더라도 자신의 외투를 망토로 삼아 사뿐히 착지할 것 같다. 갑을고시원체류기의 주인공 역시 경제적으로 몰락한 가정의 아들이며 고시원생활을 하며 삼류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가 좌충우돌 고시원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그리며 고시원에 사는 술집 여급들, 만년 고시생의 모습도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박민규씨의 소설은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경제동물로 살아남기의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자본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할 뿐이다. 감히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자본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소설 속에 제시할 수 있을까? ‘물질에 욕심을 버려라’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가르침 역시 경제 동물화 되어버린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상투적이고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 같고, 그렇다고 돈을 위해 영혼을 팔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모두가 죽기 전에 자본의 문제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해결책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가 필요였는데, 박민규씨는 그 틈을 잘 파고든 것 같다.

  박민규씨처럼 맛있는 스낵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소설과 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박민규씨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은하영웅전설’, ‘카스테라’, ‘핑퐁’ 모두 읽어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한 작가의 책을 이렇게 많이 집중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하면 나의 뇌 한 구석에 자고 있던 그가 일어나 그의 스타일로 글을 교정하려고 한다. 내가 쓰는 글은 영양가가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꼭 맛있었으면 한다. 내 글이 그 분 작품의 모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편으로는 모조품이라도 만들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내 머리에 영양가 있는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영양가 있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면 단백질보충을 위해 스낵에 쥐의 머리를 넣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박민규씨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 못 가진 자의 세상살이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다. 나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한 세대도 아니다. 주로 ‘자기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느냐?’ 혹은 ‘얼마나 더 큰 숟가락으로 밥을 먹느냐?’를 궁리한 세대이다. 소설을 창작하는 지금 이 순간이 세상의 밥상에 자신의 숟가락을 꽂으려 열심히 달렸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석 달 뒤에 나는 그들에게 달콤한 스낵 한 봉지를 선물할 수 있을까?

2008/03/25 18:47 2008/03/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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